가을! 수원, 화성 땅을 밟다
가을! 수원, 화성 땅을 밟다.
미루고 미뤄 왔던 가을나들이가 드디어
시작 되는 날. 10월 16일 아침 기운은 썩 좋지
않았다. 안개인지 매연인지 대기가 희부연 해
버스 속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으나 도심을
빠져 도계를 벗어나니 하늘이 맑게 개 묻혔던
가을 풍경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들녘의 벼는 황금색을 띄고 은행나무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어 ‘나는 가을을 타요’하는 듯
나풀대고 있었다.
나들이란 참 묘한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은
목적한 곳을 가는 즐거움보다 누구와 함께 길을
나서느냐가 중요하다고.
그렇다. 철들어 반평생을 해가 뜨면 한 지붕
안에서 일했던 동료 사우가 함께 있으니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 순배 잔이 돌아가고 정보를 공유하며 담소가
이어지니 점차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추억담과 무용담, 얘기꽃이 피는 사이 어느덧
버스는 목적지 수원 땅. 길라잡이 김지회장의 입담
좋은 해설로 수원화성과 화성의 융, 건릉은 이미
머리와 가슴에 입력 된 터 이제 확인 만 남았다.
순환열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성곽을 돈 것은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산은 발로 올라가야 제 맛이 나고 성곽은 성밟기를
함으로서 볼 걸 다 보는 것 아니겠는가.
수원화성은 세계기록유산인 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와 명성이
문화유적으로 세상에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정치로 조선을 빛내고자 노력했던 정조대왕의
숨결을 따라 이곳저곳 살피며 성곽을 걸어보니
만감이 교차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내리 걸어 화성행궁까지 답사를 마쳤다.
다산 정약용은 이곳에서도 빛이 났다. 실학의 대가인
그가 개발한 거중기는 토목건축에 쓰여 성을
쌓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정조의 탁월한 개혁정치에도
한 몫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장영실의 앙부일구(仰釜日晷)도 정조의 개혁바람으로
만들어졌고 무예와 문예에도 큰 관심을 보여
치적으로 남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화성의 건릉과 융릉 진입로는
화강암 박석이 잘 깔려 임금님의 발자취가 묻어나
있는 듯했고 그 옆길로 걸어가는 나는 조선시대 한
목민이 되어 짚세기를 신고 초라하게 가고 있는 듯
했다. 역사의 저편 구석에서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
사계는 가고 또 오는구나.
그때 가을의 바람은 지금도 부는가. 낙락장송과 상수리,
도토리나무는 이파리마다 노랗게 물들고 낙엽이 져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구나.
뒤주 안에서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듣는 자식 이산(李祘)은 얼마나 처절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 이산 그마져 끝이 안 좋아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48세 나이에 그 누구에게 살해 됐다는 타살 설(?)
(이인화 소설 ‘영원한 제국’ 참고)이 있고 보면
인간의 운명이란 누구나 점칠 수 없는 하늘만이 아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귀가길 버스에 올라 생각하니 이날 하루의 눈, 귀, 입은
제구실을 했는지. 오늘을 사는 이 시대 사람들은 후대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이것저것 생각하며
지친 노구를 의자 등받이에 뉜다.
2018.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