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그리워하는 세대
옛것을 그리워하는 세대
-오인모 회우
우리는 대부분 새롭고 신선한 것들을 추구
하지만 때로 낡고 오래된 것에 향수를 느낄
때가 있다. 고미술품이나 자기(瓷器), 고서(古書)
등 값이 나가는 골동품같은 것은 차치하고
놋쇠장식의 가구, 올드팝송 등 옛것을 찾아
그것들을 접하며 호흡하려 한다.
몇 해 전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같은 도
시권의 지금 거주지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
래저래 집을 옮긴 횟수야 많지만 나이 들어
안주할 곳이라 여기고 원도심을 떠나 외곽으
로 터전을 옮긴 것이다. 새는 앉은 곳마다 깃
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이사가 잦으
면 세간이 준다는 속담으로 함께 풀이를 한
다. 실로 이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낡
은 가구나 헌책, 그릇 따위 등 어떤 것은 못
쓰게 생겨서 버리고, 무엇은 새것으로 바꾸
고 싶어서 버린다. 또 힘들게 구입해 놓고 오
래 사용했더니 실증이 난다해서 버리기도 한
다. 이사 때는 어떤 이유로든 없애는 것도 많
고 옮기다가 부서지는 것도 비일비재다. 이래
서 이사하는 해를 패운(敗運)이라했던가?
아무튼 이것저것 버려야 할 것을 고르다 보
면 가족과 버리느냐 남기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 난감할 때가 많다. 수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려야하며, 자리만 차지하
는 운동기구, 진열만 하고 읽지 않는 책들도
버려야 할 것들이다. 뿐인가 신발류나 낚시,
등산장비를 비롯한 레저용품이 항상 말썽이
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차례 이사하는 동안 끝
내 버리지 않고 책장 맨 아래 한 자리를 차
지하고 있는 오래된 몇 권의 책이 있다. 그
것은 표지가 낡거나 손상된 빛바랜 빈티지
(vintage) 서적이다. 창간호가 대부분이지만
폐간됐다가 다시 출간한 속간호도 끼어있다.
이 가운데는 월간 순수문학지도 있고 월간 종
합잡지와 계간지도 있다. 일부 창간호는 70여
년 동안 거의 쉼 없이 현재까지 출판되는 문
학잡지와 월간지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버리지 않고 놔둔 것이 얼
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이사 때마다 천덕꾸러
기가 됐던 것들이 이제와 보니 그것은 애틋
한 추억이 담겨져 있거나 희귀 품목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 책들을 읽어 얄팍한 지식을 얻
은 것도 있었겠지만 출간된 그 때 시절, 책속
의 현장이 재현되어 다시 보는 듯해서 좋다.
1950년 1월에 창간된 ‘현대문학(現代文學)’지
와 광복 후 창간됐다가 폐간, 휴전되기 전 그
해 4월에 속간된 월간 ‘신천지(新天地)’ 등의
잡지를 보면 전후(戰後)의 한국문학과 정치
사조를 한 눈으로 보는 듯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창간호 현대문학의 필진을 보면 당시
는 물론 전후 한국 문학계를 풍미했던 시인과
소설, 평론가들로 문인록(文人錄)에 이름을
올린 유명한 문인들이다. 이들은 생전에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겨 지금도 교과서적 읽을거리
를 제공하고 있으며 문청(文靑)들의 숭앙 대
상의 인물들이다.
옛것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서적이나 생활
용기, 레코드판 등 어떤 것도 다시 접해 보면
그 때의 감정과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
어서 좋은 것이다. 옛날 유행했던 LP 음반의
경우, 판을 틀지 않고 노래 제목이 적힌 케이
스만 봐도 어떤 노래는 유년기의 추억 속으로
끌고 가고, 어느 곡은 입시시절의 치열하고
절박했던 때를 생각하게 한다. 또 보초를 설
때 군 막사에서 흘러오던 팝송들은 지금에 와
서 다시 들을 때 잠시 북풍한설 몰아치는 일
선 어느 초소로 나를 데리고 가 한참을 거기
서 머물게 한다. 감성이 풍부했던 시절의 것
들이라면 느낌의 강도가 더욱 높으리라.
아! 이제 옛것을 그리워하고 찾는 그런 세
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수구지
정(首丘之情)이라는 고사성어가 실감이 난다.
나이가 들면 태어난 옛집을 그리워하고, 오
래된 친구가 보고 싶고, 즐겨 먹었던 옛날 음
식들을 찾는 것도 늙음이라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마치 지금까지 늙어 잘 살아왔다고
누구에게나 주는 훈장(勳章)인 것처럼.
나는 오늘, 책장 아래쪽에 뉘어져 있는 빈
티지 서적가운데 마음이 가는 것 하나를 골라
읽는다. 아니 그때 사람이 되어 책속의 현장
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