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스님의 생애 (1206∼1289)
우리 고대문화에 대한 폭넓은 탐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연은 무신정변과 몽고의 침공 및 압제로 이어지는 변화와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고려전기에 문벌귀족체제와의 깊은 연계 속에 주류를 이루어오던 교종불교는 무신정권의 성립에 따라 나타난 사회 전반의 변화 에 상응하여 새로운 결사운동을 주창한 지눌의 수선사(수선사)가 주도하는 가운데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일연은 희종 2년(1206) 경주의 속현인 장산군(현재의 경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활동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의 가문은 지방의 향리층으로 짐작된다.
일연은 처음 포산에 들어온 이후 22년간 걸쳐 포산의 여러 사찰에 머무르면서 활동하는데 포산 곧 비슬산은 다양한 불교 형태가 공존했던 지역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신앙 분위기는 일연이 어느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계통의 신앙과 사상을 모은 「삼국유사」와 같은 저술을 이루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속성 김, 이름 견명, 처음자는 회연, 일연은 자중의 자, 호 무극.목암, 시호 보각. 경상 북도 경산 출생. 1214년(고종 1) 9세에 해양(전라남도 광주) 무량사에서 도를 닦고, 1219년 14세 때 승려가 되어 전국의 이름날 절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여 20세에 선불장에(승려의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였다. 1237년(고종 94)년 선사, 1259년 대선사가 되었다. 한편 몽고의 횡포가 극심하던 당시, 백성들에게 불법을 펴서 민심을 가라앉히기에 힘썼다.
또, 대구 팔공산 부인사의 '대장경'이 불타자, 현종의 명을 받아 새로 발간 하였다. 일생을 통하여 100여 권의 책을 지었는데, 그 중에서도 '삼국유사'가 특히 유명하다.
일화
일연 스님이 나이 70이 넘어서 92세의 속가(俗家)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국사(國師), 국존(國尊)의 높은 지위를 마다하고 “부모가 계신 고로 내가 생겼으니, 어머니께 효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각사로 내려오셔서 그것도 옴병(지금의 나병으로 추정)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받는 것을 스님 홀로 1년여 봉양하시며 어머니의 임종을 보셨다고 하니, 스님의 인간미를 잘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한편 불후의 역작인 『삼국유사』는 그 후 5년 여에 걸쳐서 집필을 완성하였다 한다.
일연의 생애
일연선사는 1206년 지금의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22세인 1227년 승과에 급제한 뒤 비슬산 무주암과 묘문암에서 수도하셨다. 44세인 1249년에는 남해의 정림사와 지리산 길상암에, 1264년에는 영일 오어사에 계시다가 대구 가까운 인흥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학승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72세인 1277년에는 청도 운문사에 주석하시다가 충렬왕에 의해 국존에 추대되었고, 이곳에서 삼국유사의 집필을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284년에 인각사로 와서 구산문도회를 연 뒤 1289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일연의 업적
5년 후 14세 때에 삭발하고 중이 되어 선종에 속하는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수학, 설법하는 동안에 그의 편판은 날로 높아져서 사람들이 조계종의 4선인 가운데 첫째로 추대하였다. 고종 14년 겨울에 승과에 나가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는데 이때 나이 22세였다. 이후 그는 여러 절을 두루 거치며 수도 생활을 하였고, 그 깨달음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가다. 그가 주관하는 법회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의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삼중대사, 대선사 등에 올랐으며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충렬왕 15년 6월에 병을 얻어 회복하지 못할 것을 알고 손수 왕에게 올릴글을 쓰고 여러 스님들과 함께 무답으로 날을 보냈는데 이 날 밤에 둘레가 한 자가 넘는 큰 별이 절에 떨어졌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 떠나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몇몇 중과 사람에 대한 문답을 한 후 자는 듯이 돌아가셨다. 이때 오색의 빛이 절 뒤에서 일어나 타오르는 듯 했고 그 뒤에 는 흰구름이 덮여서 하늘을 향하여 가버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 84세의 일이다.
일연을 사람됨이 과묵하여 허튼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가식없이 진정으로 대했으며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학문하는데 있어서도 특별한 스승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덕을 닦으며 수양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항상 곁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룬 불교적인 업적과 많은 저서이다. 일연이 쓴 책은 모두 100여권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그 정력과 박식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와 관련있는 불교서적은 전하는 것이 없고, '삼국유사'만이 남아서 국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삼국유사는 고구려, 백제 , 신라등 삼국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그가 살던 고려 중엽까지의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도 언급되어있다. 그 중 가장 중시되는 내용은 신라시대의 향가14수이다. 여기에 실린 향가는 그 내용에 있어 제각기 다른 특색을 갖고 있다. 향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설화, 신화 등 역사적 야사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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