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산 산행 일기
벼르고 벼렸던 산우회의 1박2일 가을
나들이 산행 날이다. 연중 한차례의 특
별 산행이라서 그런지 설레는 마음으로
전주를 출발한지 한 시간 여 만에 부안
내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 출발 시간으로는 좀 늦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능가산 산행이 시작
됐다. 9명 회우 전원이 동행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못내 아쉬움이
컸지만 어찌하랴 다함께 가는 것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내소사 전나무 숲길로 한참을 가니
능가산(楞伽山) 관음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능가산은 영주산,
봉래산으로도 불러지는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다.
주봉인 관음봉은 해발 424m로 그리
높지 않지만 급경사 바윗길과 태크
로드 계단이 많은 힘든 코스다.
다행이 등산 보호대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초행자도 무난히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이어서 전국의 등산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은 섭씨 16도의 기온인데도
바람이 없고 가을햇살이 내리쬐는
산등성이라 그러는지 금방 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흐른다. 며칠 전
날씨가 싸늘해져 추울 새라 초겨울
옷차림으로 나선 것이 몹시
후회스럽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관음봉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여 쌓였던
피로가 풀리고 흐르는 땀방울이
멎는 듯 했다. 발아래
명찰 내소사 경내가 고즈넉하게
보이고, 멀리 서해의 푸르스름한
섬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가을의 끝자락의 산록 활엽수는
이파리가 다 떨어지거나 고스라져
앙상한 나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만추의 계절은 언제나 봐도
황량하고 쓸쓸하기만하다.
관음봉을 오르는 산객들은 코스가
힘들어서인지 완주를 포기하고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곤 한다.
이날도 몇 팀이 관음봉을 점찍고
그냥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관음봉에서 세봉과
세봉 삼거리를 거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소요시간 4시간짜리
원점회귀 노선을 택했다.
관음봉에서 잠시 쉬고 세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세봉까지 가는 코스도
몇 개의 준령을 넘어야하고 태크
계단이 이어져 험한 코스는 관음봉
가는 길 못지않게 가파르다. 산행이
어찌 편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산행이란 오르고 내리고 내렸다가
또 오르며 가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는 법.
인생살이도 한 고비 한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잘 넘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산행과 비슷하다.
인생이란 어떻게 보면 한 생애가
모험과 도전, 용기로 점철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법정스님의 글 "曲線의 美"란
글귀가 떠오른다. "끝이 빤히 보인
다면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모르기
때문에 살맛 나는 것이다"
인생은 힘들고 그 것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을 강조한 것 같다.
목적지 부근 입암 마을 인가가
수목사이로 가까이 보이는 듯 하지만
하산 길은 만만치 않았다.
오후 4시가 돼서야 시발점인 내소사
주차장에 드디어 도착 했다.
일찍 하산한 일행과 합류해 모항
숙소로 향했다.
벌써 서해는 저녁노을이다. 수평선
너머 붉게 물든 태양이 해수면으로
내려앉는 모습이 마치 불에 달궈진
쟁반이 물속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한적한 바닷가엔 연인, 가족들끼리
모래톱을 거닐며 추억 쌓기에
열중이다.
서해 모항의 저녁바다는 언제나 봐도
낙조 모습이 일품이다.
2019.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