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철학

[스크랩] 방하착(放下着)과 착득거(着得去)

망우초 2015. 8. 22. 13:19

 Evening Bell / Sheila Ryan

<방하착(放下着)과 착득거(着得去)> 

 

사의 스님들 사이에 방하착이란 예화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스님이 탁발을 하러 길을 떠났는데,

산세가 험한 가파른 절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절벽 아래서 사람 살려! 라는

절박한 소리가 실낱같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실족을 했는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다행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오? 라고

스님이 물어보니 다급한 대답이 들려왔다.


사실은 나는 앞을 못보는 봉사 올시다.

산 넘어 마을로 양식을 얻으러 가던 중 발을 헛딛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행히 이렇게,

나뭇가지를 붙잡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있으니
뉘신지 모르오나 어서 속히 나 좀 구해주시오~

이제 힘이 빠져서 곧 죽을 지경이오! 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자세히 아래를 살펴보니

그 장님이 붙잡고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는

땅 바닥에서 겨우 사람 키 하나 정도 위에 있었다.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 장님에게 외쳤다.
지금 잡고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 버리시오.

그러면 더 이상 힘 안들이고 편안해 질수있소!


그러자, 절벽 밑에서 봉사가 애처롭게 애원했다.

내가 지금 이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면

천길 만길 낭떠리지로 떨어져 즉사할 것인데,

앞못보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나좀 살려주시오~ 라고 애걸복걸 했다.


그러나, 스님은 봉사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쳤다.

그런 와중에 힘이 빠진 봉사가 손을 놓치자

땅밑으로 툭 떨어지며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은 장님은

졸지간에 벌어졌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파악하고

멋적어 하며 인사치례도 잊은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우리도 앞못보는 장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봉사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오직 자신을

살려주는 생명줄인 줄 알고 죽기살기로 움켜쥐듯이,

끝없는 욕망에 집착하며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면 곧 죽고 못 살 것 처럼 아둥바둥 발버둥치는

청맹과니와 같이 눈뜬 장님이 바로 우리들이 아닌지.


썩은 동아줄과 같은 물질을 영원한 생명줄로 착각하고

끝까지 붙들고 발버둥치는 불쌍한 우리네 중생들,
자기를 지켜주는 생명줄이라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놓아 버려야 편안하게 살 수있는 길이라고

알려 주는데도 불구하고,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없다.


방하착(放下着)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라,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등이 얽혀있는데, 그런것을 모두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버리라는 말이 방하착이다.


국 당나라때 선승 조주스님이 말씀하셨다는

착득거(着得去)는 지고 가거라는 말로 방하착의 반대이다 

 

스님들의 화두중에 '방하착'이란 게 있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는 뜻"을 방하착이라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는 조주 스님이 내리신 역화두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 내려놓을게 없으면 지고 가거라."의
착득거(着得去)가 있습니다.


손 안에 물건을 쥐고 있다가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상념없이 소유욕없이

바로 아래로 떨어뜨려서 손 안에 그 무엇도 남기지 않는 것,

모든 것을 다 비워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출가를 하면서 스님들이 제일 먼저 행하시는
바로 인연끊기의 수행방법 중 처음입니다.

모두를 버리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방하착 해야 중이 되고
비로소 절 밥을 먹을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방하착이 되지 않고 번민과 고통의 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스님될 자격이 없으니 머리깍는 일을 할 수 없게 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무거우니 내려놓으시지요.

방하착을 실천하시면 시작이 반이란 말에 빗대어 견주자면

그 순간이 바로 반 부처의 출발이신 셈이지요.
여러분들도 한 번 실천해 보십시요.


"미고사"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의
앞 머리만 잘라서 만든 조어입니다.

화나고 서운하고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미고사"를 외치시라고 그리도 말씀 드렸건만....

아직은 그게 많이들 어려우신 모양입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인
미고사를 외치면 편하답니다.

그래도 안되시면 마음을 비우시고 그냥 버리십시요.
그도 방법입니다. 물론 어렵지요.


비우고 버리십시요.

그럼 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불가의 방하착처럼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면
그때부터는 반 부처입니다.


비우고 버리면 그토록 편한 것을~

지금 이나라의 위정자는 국민으로부터 이제까지 누리고 가졌던
기본적인 자유조차 빼앗고
오직 자기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과 아집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수많은 일들을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라는 몽둥이를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는 형국과 똑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영원할까요?

한낮에 꾸는 개 꿈과 같음을 왜 모를까요?

 

다 내려놓았으나 다시금 지게 합니다.
모든 걸 다 비우고 내려놓았는데 세상사가 그러지 못하도록 만들어
스님들이 다시 착득거를 하고 계십니다.

불가에서 중생을 계도하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계신데...

그러면 방하착과 상충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왜일까요?

지금 정부의 참으로 못된 일에 방하착하신 스님들이
염불만 외우시며 절집에만 계신다면
그 또한 부처님의 법이 아니기에
스님들이 다시금 착득거의 고행을 지시고자

다시금 산문밖으로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위정자가 정신을 못차리고

틀린 것은 바로 잡아야 이 나라가 제대로 갈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큰 스님들이 주장자를 내리쳐서라도
그 길을 바로 잡아야 겠지요.

그게 바른 불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실청행이 맞지요.
방하착은 개인의 일이고,
나라와 국민은 대의를 위한 일이니까요.


위정자의 잘못된 생각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언론이 목졸리고, 낙하산이 난무하고,
수없이 많은 곳에서 그릇된 방향으로만 가려는

이때 불가의 가르침이자 부처님이 걸으셨던 낮는 곳으로 임하는
오체투지의 마음없이
어찌 신도들이 시주한 곡기를 먹을 수 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하여 혼자만의 편함을 수도에 편승하여

산문안에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으오리까?

 

"방하착은 개인의 일이고,

백성과 나라의 일은 대의이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고자 아래로 가장 밑 바닥으로
나투시는 스님들의 실천행입니다.

따라서 지금 방하착은 맨 앞자리에서 밀려
맨뒤에 자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주 스님의 말씀처럼 지금 산문밖으로 나오시는 스님은
다 비우셔서 더 비울게 없으니
이제"무거운 짐을 지러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저 일개 무지랭이 돌팔이 무명처사가 ~

방하착의 큰 깨달음을 깨치신 스님(불가에서 스승을 일컷는 말)들의
고귀하신 생각을 감히 헤아려 보는 크나큰 죄를 범했음을

부처님의 자비로 용서를 청하올 뿐입니다,

주장자로 정수리를 얻어 맞는 벌은 후일 반드시 내려 주시옵소서.


두손 모으옵고 법공 아래로 나투옵니다.
-부처님 전에...법공 합장하옵니다.-


방하착(放下着)하라는 말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온갖 번뇌,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등이 얽혀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두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버려라는 말이 방하착입니다.

방상착이라는 말은 표현이 어색하군요
아래에 조주스님이 말씀하셨다는
"지고 가거라(착득거=着得去)"라는 말이 방하착의 반대말입니다.


조주(趙州 778∼897) 스님한테
엄양(嚴陽) 스님이란
분이 가서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참선에서는 한 물건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거든요.
그것은 물질적인 물건보다도
우리 마음으로 시()야, 비()야,
좋다, 궂다, 이쁘다, 밉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으니까

조주 스님께서 말씀이
 "놔 버려라, 방하착(放下着)하라" 하니까

그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한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무엇을 놓을 것입니까?"

가지고 있어야 놓을 것인데,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새삼스럽게 놓을 것입니까?

그러니까 조주 스님께서
"그러면 지고 가거라.
(착득거=着得去)" 라고 하셨습니다.

 

출처 : ronaldo200
글쓴이 : 이기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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