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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물든 고창 선운산에 오르다

망우초 2017. 6. 30. 16:52

 

 

 

    연둣빛 물든 고창 선운산에 오르다 

                                                           -오 인 모
 

  석가탄신일 전날 오랜만에 고창 선운산을 찾았다. 선운사 뒤편의

동백나무숲을 돌아보며 산행을 시작한다. 이미 5월에 들어섰으나  

동백꽃은 끝물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지각생은 늘 있는 법, 늦게 핀

동백꽃 몇몇이 아직 남아  탐방객들을 반겼다.

  5백년 묵은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활짝 피운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를 생각하니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사찰 경내 산책로 변에 자라는 싱싱한 야생 차 밭이 동백꽃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도솔산으로도 불러지고 있는 선운산은 해발336m로 이웃한 청룡산과

국사봉, 수리봉, 경수산 등 몇 개의 연계 산으로 이뤄졌으나 일행은

선운산의 제1등산코스를 택했다. 선운사에서 진흥굴, 도솔암, 천마봉,

낙조대, 용문굴, 도솔암 뒤편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노선이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가는 길은 완만하지만 도솔암에서 천마봉까지는

수 십 개의 인조 목재 계단과 철 계단이 가파르게 놓여있어 초행자로는

제법 힘든 코스다. 편한 산행이 어디 있으랴마는 동내 뒷산도 새롭게 가면

만만치 않은 것을 산을 오르는 것은 처음부터 나와의 싸움인 극기이니만큼

힘이들어도 감수해야만 한다.

  5월초인데도 섭씨24~5도의 초여름 날씨를 보여 초입부터 땀으로 옷을

적시고 목이 말라온다. 힘이 덜 드는 산행을 하려면 우선 배낭의 짐을

줄이고 오르는 길은 보폭을 좁게 그리고 스틱을 잘 활용해야한다.

  더욱이 정상으로 가는 길바닥이 마사 토에다 잔돌이 많아 자칫 미끄러워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요망된다. 몸은 좀 힘들지만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한줄기 하늬바람이 더위를 말끔히 씻어줘 다행이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먼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둣빛으로 물들고 있는

선운산은 수종이 대부분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도토리나무들로 5월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대장군처럼 의젓하게 서있는 천마봉을 뒤로하고

한 발 한 발 오르니 어느덧 정상 낙조대다.

  멀리 서쪽바다가 안개인 듯 구름인 듯 부옇게 앞을 가려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청명한 날씨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두들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일행은

여기서 잠시 쉬며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힘들게 올라와 정상에서

눈 아래 준령들을 바라보며 갖는 잠깐의 휴식은 산객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의 극치다. 또 서로의 건강정보를 공유하고 일상의 소소한 얘기들을 꺼내

담소하는 것도 산행의 또 다른 재미다.

  하산은 오르는 길과 반대 길이다. 한참을 내려가 용문굴에 다다르니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용문굴은 도솔암 위쪽에 있는

큰 바위굴로 선운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굴이다. 전해오는이야기로는

서기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았더니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용이 한 마리 살더라는 것이다. 그 용은

검단선사에 의해 쫒겨났고 급히 도망치다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굴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니 도솔암 뒤길에 다다랐다.

도솔암은 본사선운사의 산내 암사로 본래는 상, , , , ,

6도솔암 이었으나 조선후기에 들어서 상, , 북 세 개의 도솔암만 남게

되었다. 특히 암자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은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저렇게 높은 위치의 암벽에 누가 어떻게 새겼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불좌상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높고 큰 것으로

오랜 풍상에 닳고 닳아 멀리서 보면 전체의 형상이 뚜렷치 않고

윤곽만이 보일뿐이다.

  도솔암에서 내려오는 길은 도솔천을 따라 선운사로 이어지는 평지 길로

단풍나무 터널이 시원한 계곡 물과 어울러져 선운산의 풍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선운사 경내에 이르니 스님들의 석가탄일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법회가

열리는 마당에는 연등과 청사초롱을 매달고 갖가지 꽃 장식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반야심경 독경소리를 들으며 산그늘을 밟고 일주문을 빠져나오니 어느새

주차장이다.

    *

이 산행기는 등산 잡지 '월간 山' 7월호에 게재된 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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