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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 땅, 고령 나들이

망우초 2016. 4. 22. 13:21

   

       가야 땅, 고령(高靈) 나들이

 

 

 

 

  4월 봄나들이는 가야산 줄기가 남쪽 끝자락에서 머문 곳,

화려한 왕국 대가야, 고령의 가야문화권을 찾았다.

  경상북도 고령은 남으로는 경남, 서북으로는 전북과 도계를

이루는 지형적으로도 산수가 수려하고 아담한 영호남 중심지역이다.

그래서였던가. 기원전에 시작한 가야국은 기원후 5백 여 년이나

이어 온 가야연맹이었다. 그 시절 중국과도 교류가 활발했었다니

소국은 아닌성싶다.

  전주지회 회우 23명은 419일 아침 일찍, 전주를 출발해

대가야(大伽倻)땅 고령의 진산인 해발 310m의 주산(主山)

올랐다. 주산은 가야국의 왕릉을 비롯해 크고 작은 7백 여 곳의

고분이 산재해 있어 가야시대 매장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지산리 44호 고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순장(殉葬)풍습이

확인 된 곳으로 대가야왕릉전시관에 순장무덤 내부가 원래

모습으로 재현되어있어 탐방객들로부터 큰 호기심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순장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신하나 시녀들을 살아있는 상태로

혹은 죽여 함께 묻는 풍습으로 이 시절 가야국 이외에 삼국시대에도

계세사상(繼世思想)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고조선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열국시대- 동부여와 삼국,

가야국을 포함 5국 시대- 삼국과 가야국이 신라에 멸망하기 전까지의

4국 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시대- 통일신라와 발해 2국 시대-

이후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는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었음)

  순장무덤에 대해 문화 해설가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전시관을

빠져 나오는 탐방객들의 모습은 해괴한 매장문화에 그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숙연해지는 모습이다.

  일행은 인근에 있는 대가야역사관도 둘러봤다. 대가야 전성기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는 금동 관과 투구, 갑옷 그리고 토기 등은

신라 백제시대 못지않은 제조 기술을 보이고 있었다. 가야시대는

이미 철기문화가 융성했던 것으로 봐 접경국가들끼리 전투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추측 할 수 있었다.

  주산을 내려와 읍내로 가던 중 우리는 대가야가 낳은 악성

우륵선생의 발자취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우륵박물관을 찾았다.

우륵은 고구려 왕산악, 조선조 박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가야금을 창제, 보급해 온 악사다. 당시 악이란 단순히 소리를 내

감흥을 돋우는 것 외에 예()와 결합해서 예악(禮樂)이란 통합영역을

형성해 상호보완적 역할로 왕과 신하, 지배층과 백성간의 유대개념도

추구한 것이 아니었던가를 생각해 본다. 그래서 악() , 가야금이

일반인에게도 널리 보급 되어 연주하며 즐겼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가야금 연주 대가들의 이력을 소개하고 있었고

현존 가야금 연주자이며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황병기 교수의

활략상도 잘 보여줬다. 그가 작곡한 "침향무""비단길"은 해외에서도

CD로 발매되어 음악애호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흘러간 노래 황금심의가야금 열두 줄이 떠오른다.

      오동잎 한잎 두잎 영창 가에 나리는 밤

      짝 잃은 외기러기 구슬피 또 우는 구려

      구만리 황천길은 한번가면 못 오 나요

      가야금 열두 줄에 시름을 걸었소.

                               -가야금 열두 줄 1절

 

  나라를 잃고 가야금의 혼이 깃든 정정고을(고령읍 쾌빈동 琴谷마을)을

떠날 때 악사 우륵의 심사가 얼마나 처연하고 통절했을까. 가야금 열두

줄에 생을 바치고 혼신을 다해 곡을 부쳐 탄주했던 그의 180 여 곡은

애석하게도 지금 한곡도 전해 오지 않고 있다니 우리의 마음을 또 한 번

슬프게 한다.

  정정고을을 뒤로 하고 양정동 보물 제605호 암각화를 찾았다.양정동

암각화는 겹둥근무늬(同心圓紋), 십자무늬(十字紋), 탈모양(假面形態)

바위를 쪼아서 만든 것으로 둥근 무늬는 해와 달을 상징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양정동 암벽화는 울주 반구대 암벽화와 함께 선사시대 암벽그림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비밀스러운 암벽의 그림들을 생각하며 귀가 버스에

오르니 고령의 주산이 봄볕을 받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신비스런 고분의 대가야, 악성 우륵의 가얏고! 가야 땅 도읍지 고령은,

고령군민의 헌장답게 찬란한 문화를 창건한 자랑스러운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글/사진 오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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