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솔바람길을 걷다
연두 빛 이파리가 진초록 신록으로 바뀌어가는 5월의 끝자락,
그 주말에 공주 麻谷寺를 찾았다.
마곡사 초입은 아스팔트 열기가 따가운 햇볕과 함께 몰아붙여
탐방객을 초여름 무더위 속으로 가두고 있었다.
공주를 밤(栗)의 고장이라 했던가. 밤꽃이 하나둘 피기시작하면서
특유의 꽃 향이 코를 자극한다. 도로변에 자리 잡은 노점상에서
나오는 군밤냄새와 더불어.
한참을 지나니 마곡사 진입로의 가로수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흐르는 계곡물 소리까지 곁들이니 어느새 더위가 딱 가신다.
여름의 산사는 진입로의 활엽수 그늘이 있어 좋다. 마곡사도 여느
산사와 다름없이 산이 에워싸고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해 더욱 풍족한 절간냄새가 났다.
더욱이 공주 마곡사는 태화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의 전통산사
중 하나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보물 802호인 대광보전과 해탈문 등 보물만도 20여종에 이르고 있고
김구선생의 발자취가 고스라니 남아있어 연중 탐방객이 끊이질 않고
있는 名刹이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을 지나고 얼마 안돼서 그런지 경내 나무마다
연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언뜻 보면 사발만한 사과가 달린
것도 같고 꽃수박이 열린 것도 같아 신도들에겐 불심과 함께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사찰 경내를 돌다 보면 사찰 위쪽 솔바람 산길에 백범 길과
명상 산책길, 송림숲길 등 힐링을 위한 스토리텔링 걷기 코스가
3개로 나눠있다.
김구선생이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죽이고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 중 탈옥했다가 승려를 가장해 숨어 있던
곳이 마곡사다. 그때 김구선생이 머물러 있으면서 사색에 잠기며
애국의 정신을 싹틔운 곳이라 해서 마곡사를 찾는 이는 이 길을
찾곤 한다.
나도 한번 소나무 숲길 코스를 거닐며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불꽃 튀는 뜨거운 우국의 정신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일인을 살해하고 숨어 살아야했던 당시의 김구선생은 참담하고
암울한 심정을 어떻게 달래며 이곳에서 몇 날을 보냈을까.
이 나라의 암담한 앞길과 자신이 헤쳐가야 할 정치적 로드맵을 어떻게
그려나가고 풀어야 할 것인가를 고심했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백범의 심사가 어떠했을까.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은둔생활이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를 생각 해 본다.
김구선생이 평소 즐겨 읊고 써왔던 휴정의 선시 한 구절이 생각 나
여기 옮겨본다.
마곡사 숲길을 거닐다 경내를 빠져 나와 한길에 접어드니, 내가
夏安居를 마치고 속세에 첫 발을 디딘 한 스님인양 갑자기 대기가
끈적거리고 후텁지근하고 귀가 멍해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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